경제학은 단순히 수학적 계산이나 시장 이론에 그치지 않고,
인간 사회를 바라보는 철학적 관점과 정치적 선택을 반영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경제학은 언제나 시대적 과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발전해왔습니다.
20세기 이후의 경제학 논의에서 가장 큰 대립축을 형성한 인물 중 두 명을 꼽으라면,
바로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와 미국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일 것입니다.
두 사람은 시대적 배경과 학문적 방법론, 그리고 지향점에서 큰 차이를 보입니다.
피케티는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부 개입과 누진세를 강조합니다.
반대로 프리드먼은 시장 자유와 개인의 선택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며,
정부 개입을 최소화할 때 경제와 사회가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피케티와 프리드먼은 경제학의 양대 축인
분배 vs 성장, 정부 개입 vs 시장 자유라는 오래된 논쟁을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오늘날 자산 불평등, 금융 위기, 복지 논쟁, 시장 규제와 같은
문제를 둘러싼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이 두 학자의 사상적 틀 위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사상은 어떤 점에서 충돌하며, 또 어떤 교훈을 현대 사회에 남겼을까요?
본문에서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를 살펴보겠습니다.
자본주의 진단: 불평등 vs 효율성
토마 피케티와 밀턴 프리드먼의 가장 뚜렷한 차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진단에서 드러납니다.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자본 수익률과이 경제 성장률이라는 불평등 공식을 제시했습니다.
자본 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항상 크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부는 소수에게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그냥 두면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사회적 불안정과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피케티에게 자본주의는 조정과 개입 없이는 스스로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체제입니다.
반면 프리드먼은 자본주의를 자유와 번영의 토대로 보았습니다.
그는 자본주의와 자유에서 시장이야말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시스템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눈에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결함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과 선택의 결과일 수 있으며,
이는 오히려 자유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피케티와 프리드먼의 진단 차이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피케티는 글로벌 금융위기와 양극화 심화가 문제시되던 21세기에 활동했으며,
이를 직접 체감한 세대로서 불평등을 가장 중요한 화두로 삼았습니다.
반면 프리드먼은 냉전 시기, 정부 규제가 지나치게 확대되고
복지국가 모델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던 20세기에 활약했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오히려 과도한 국가 개입과 비효율이 더 큰 문제로 보였던 것입니다.
또한 두 학자는 자본주의의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상반된 태도를 취했습니다.
피케티는 자본주의가 그대로 유지될 경우
불평등 심화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반대로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야말로 개인의 창의성과 혁신을 촉진하며,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부를 창출해 사회 전체를 이롭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피케티는 불평등을 자본주의의 병리 현상으로,
프리드먼은 자유와 성장의 부수적 산물로 이해했습니다.
같은 체제를 두고도 바라보는 관점은 극명히 달랐으며,
러한 시각 차이는 오늘날 정책 논쟁의 근본적인 갈등 축으로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해법: 누진세와 복지 vs 시장 자유와 작은 정부
피케티와 프리드먼의 차이는
자본주의에 대한 해법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피케티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강력한 누진세와 글로벌 자본세 도입을 주장했습니다.
그는 초고소득자와 초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고,
이를 재원으로 교육·복지·사회 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자본이 세대를 넘어 대물림되며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자산 재분배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역사적 근거도 제시했습니다.
20세기 중반, 유럽과 미국이 두 차례 세계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면서
누진세 강화와 복지 확대 정책을 시행한 시기에,
불평등은 완화되고 사회적 이동성이 높아졌습니다.
피케티는 이를 근거로 “세금은 단순히 국가 재정 확보 수단이 아니라,
사회 정의를 위한 핵심 도구”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없으면 자본은 언제든 국경을 넘어 세금을 회피할 수 있기 때문에,
국제 공조가 필수적이라고 보았습니다.
반면 프리드먼은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작은 정부와 시장 자유를 강조하며,
세금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복지 제도가 확대될수록 사람들은 스스로의 경제적 책임을 회피하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고 우려했습니다.
따라서 복지는 최소한의 안전망에 머물러야 하며,
나머지는 시장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의 대표적 제안인 음의 소득세는 이 같은 사상을 잘 보여줍니다.
이는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복지 제도를 줄이는 대신,
일정 소득 이하의 사람들에게 자동적으로 세금 환급 형태의 지원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기본적인 생활은 보장하되, 여전히 일할 유인을 유지하게 하려는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이 두 해법은 여전히 논쟁의 중심에 있습니다.
불평등이 극심해질 때는 피케티의 누진세 모델이 지지를 얻지만,
반대로 지나친 규제와 복지 남용이 문제 될 때는 프리드먼의 작은 정부론이 힘을 얻습니다.
결국 두 학자의 해법은 대립적인 동시에,
상황에 따라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 주는 교훈: 조화의 필요성
그렇다면 두 학자의 주장은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우선 피케티의 분석은 현대 자본주의의 불평등 현실을 설명하는 데 설득력을 가집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양극화와 중산층 붕괴가 두드러졌고,
한국 사회에서도 부동산 가격 폭등과 세습 자본주의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케티가 강조한 누진세, 복지, 교육 기회의 확대는
여전히 강력한 정책적 대안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프리드먼의 시각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지나친 정부 개입은 때로는 비효율과 부패를 낳을 수 있으며,
시장의 자율성이 억눌리면 경제의 역동성과 혁신이 약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실제로 과도한 규제는 기업가 정신을 위축시키고,
복지 제도의 남용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경고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교훈은 한쪽만의 해법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불평등이 심화될 때는 피케티의 정책이 필요하고,
시장이 경직될 때는 프리드먼의 자유론이 힘을 발휘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논의되는 부유세와 복지 확대 정책이나,
미국에서 추진되는 스타트업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정책은
사실 두 학자의 사상을 현실적으로 절충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분배와 성장, 정부와 시장의 균형을 찾는 것이며,
이는 앞으로도 세계 경제의 영원한 과제가 될 것입니다.
토마 피케티와 밀턴 프리드먼은 각각 불평등과 자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해석했습니다.
피케티는 자본주의의 불평등 구조를 비판하며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제도적 재분배를 강조했고,
프리드먼은 개인의 자유와 시장 자율성을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작은 정부를 지향했습니다.
오늘날 자산 불평등과 양극화는 피케티의 주장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있으며,
동시에 글로벌 경기 침체와 혁신 정체는 프리드먼의 시장 자유론을 다시금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의 사상은 어느 한쪽만 옳고 다른 한쪽이 틀린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강조점이 달라질 뿐입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과제는 피케티와 프리드먼 중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사상을 조화롭게 융합하는 것입니다.
불평등을 완화하면서도 시장의 자유와 효율을 보장하는 길,
그것이 21세기 자본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