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버닝을 시작한 지 어느덧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불로 그림을 새기는 작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도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나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버닝펜의 열, 팁의 각도, 손의 힘도 중요하지만, 결국 불이 닿는 재료가 되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우드버닝을 배울 때만 해도, 저는 나무는 다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여러 재질의 나무를 직접 사용해보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같은 도안, 같은 온도, 같은 손의 움직임이라도 나무에 따라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지고,
자작나무는 섬세하고 부드럽게 그을리고, 소나무는 결이 거칠지만 따뜻한 느낌을 주며,
월넛은 묵직한 색감으로 깊은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이처럼 나무의 재질은 단순히 ‘표면의 차이’가 아니라 ‘표현의 언어’ 자체를 바꿉니다.
불을 다루는 예술인 우드버닝에서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동반자’이며,
나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불의 온도를 제어할 수도,원하는 감정을 표현할 수도 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작업하면서 느낀 대표적인 우드버닝용 나무들의 특징과 차이,
그리고 초보자에게 추천드리고 싶은 나무 선택법을 하나씩 자세히 나눠보려 합니다.

자작나무 – 부드럽고 섬세한 표현의 기본
우드버닝을 처음 배우는 분들에게 가장 추천드리고 싶은 나무는 자작나무인데,
자작나무는 결이 촘촘하고 균일하여 버닝펜이 부드럽게 움직이므로,
열을 고르게 받아들여서 초보자라도 안정적인 선을 그릴 수 있어
제가 처음 우드버닝을 시작할 때도 자작나무를 사용해 연습을 하였습니다.
불의 온도를 익히기에도 좋고, 선이 번지지 않아 그림의 윤곽을 잡기도 쉬웠으며,
무엇보다 버닝펜의 팁이 닿을 때마다 ‘사각사각’하고 들리는 미세한 소리와 은은한 나무 향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습니다.
자작나무는 색이 밝고, 표면이 매끈하여 작업을 할때 그림의 선명도가 뛰어나고,
음영이나 글씨를 새길 때도 깔끔하게 표현되므로 특히 캘리그래피나 얇은 라인 작업에 적합합니다.
버닝펜의 열이 강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갈색톤이 나오기 때문에 온도 조절이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에게 부담이 적습니다.
다만 단점도 있습니다.
자작나무는 결이 부드럽기 때문에 너무 높은 온도로 작업하면 쉽게 타버리고,
특히 같은 자리를 반복해서 그을리면, 검게 탄 흔적이 생기거나, 표면이 움푹 패일 수 있으니
따라서 열을 너무 오래 머무르게 하기보다 짧고 일정하게 움직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자작나무를 사용할 때 보통 350~400도 사이의 온도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데,
이 정도 온도에서는 선이 안정적이고, 색의 그라데이션을 조절하기에도 좋습니다.
명암 표현을 할 때는 팁을 살짝 기울여 표면을 부드럽게 문질러주면 연필로 스케치한 듯
자연스러운 효과를 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자작나무는 ‘기초를 배우는 교과서 같은 나무’로써,
단단함과 부드러움의 밸런스가 좋아 감각을 익히기에 최적입니다.
한마디로, 우드버닝의 첫걸음을 안정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안전한 친구’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나무 – 따뜻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결의 아름다움
소나무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나무 중 하나입니다.
특히 한국의 기후에서 자주 자라기 때문에 공방이나 목재상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소나무는 밝은 황갈색에 뚜렷한 결을 가지고 있어 자연스러운 질감을 살린 작품을 만들기에 적합합니다.
처음 소나무에 불을 대보면 자작나무보다 훨씬 거친 느낌을 받습니다.
불이 닿는 부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번지고, 수지(송진)가 나오는 경우도 많은데 송진 때문에
일정한 톤을 내기 어렵지만, 오히려 그 불균일함이 자연스럽고 따뜻한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소나무로 작업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나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결이 선명해서 불의 흐름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 결 사이 사이로 색이 번지면서
마치 나무가 숨 쉬는 듯한 질감이 생겨 났습니다.
꽃잎이나 잎사귀 같은 유기적인 형태를 그릴 때 특히 아름답지만
소나무는 초보자에게는 약간 까다로울 수 있습니다.
송진이 많은 부분은 버닝펜이 미끄러지거나 잘 태워지지 않아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색이 번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용할 때는 반드시 온도를 낮게 시작하고, 버닝펜을 천천히 움직이며
나무의 질과 결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소나무는 결이 거칠기 때문에 세밀한 그림보다는 자연스러운 풍경이나 문구, 패턴 같은
감성적인 디자인에 훨씬 더 잘 어울립니다.
저는 소나무로 작품을 만들 때 일부러 선을 완벽히 맞추지 않고 결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태우면서,
그럴 때 오히려 작품이 더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소나무의 장점은 그 따뜻한 색감과 향기입니다.
작업 중 은은하게 퍼지는 소나무 향은 마음을 안정시켜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면서,
그래서인지 소나무 작업을 할 때는 시간이 유난히 천천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므로,
소나무는 우드버닝에 있어서 ‘자연 그대로의 미’를 느끼게 해주는 재료입니다.
완벽함보다는 자연스러움을 좋아하는 분들께 특히 추천드리고 싶은 나무입니다.
월넛 – 깊이감 있는 색과 고급스러운 질감
월넛(호두나무)은 우드버닝 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급 재질 중 하나입니다.
짙은 브라운빛의 나무결은 그 자체로 이미 작품처럼 보입니다.
색이 진해서 음영 대비가 강하게 표현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할 수 있어서,
저는 자작나무와 소나무로 기본기를 익힌 후 처음으로 월넛을 사용해보았는데,
그 순간 느꼈던 감동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불의 열이 닿자마자 표면이 부드럽게 타오르며 묵직한 갈색빛이 퍼져나갔으며,
그 빛은 마치 세월의 흔적처럼 고요하고 깊었습니다.
월넛은 밀도가 높고 단단하기 때문에 열을 강하게 주어도 쉽게 변형되지 않습니다.
덕분에 명암 표현이나 디테일한 작업을 하기에 유리합니다.
특히 인물화나 정물화 같은 사실적인 작품에 적합하며, 선의 두께를 조절하며 그라데이션을 넣으면
마치 목탄화처럼 깊이 있는 표현이 가능한 재료입니다.
하지만 월넛은 결이 단단한 만큼 버닝펜이 쉽게 미끄러지지 않아 손의 압력이 중요합니다.
너무 약하면 색이 연하고, 너무 강하면 표면이 움푹 패일 수 있으므로
그래서 일정한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며 열이 균일하게 퍼지도록 신경 써야 합니다.
또한 월넛은 다른 나무보다 기본 색이 어두워서 얇은 선이나 밝은 명암은 잘 드러나지 않아서
이럴 때는 팁을 세워서 짙은 부분과 옅은 부분의 대비를 강조하는 것이 좋습니다.
조명을 활용해 사진을 찍으면 그 음영의 깊이가 더 도드라져서 작품성이 높아집니다.
월넛의 또 다른 장점은 내구성입니다.
습도나 온도 변화에 강해서 오랫동안 색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므로
그래서 선물용, 전시용 작품으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저는 월넛 작업을 할 때마다 ‘성숙한 나무’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자작나무가 순수하고, 소나무가 따뜻하다면 월넛은 차분하고 묵직한 인품이 느껴집니다.
시간이 쌓인 듯한 질감 속에서 불빛이 은은하게 번질 때, 그 깊은 울림이 작품에 고스란히 담깁니다.
우드버닝은 불로 그리는 예술이지만, 그 불을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나무’입니다.
불의 흔적이 나무 위에 새겨질 때 그 나무의 성질에 따라 감정의 결이 달라집니다.
소나무는 따뜻하고 자연스럽습니다.
월넛은 깊고 고요합니다.
이 세 가지 나무만 잘 이해해도 우드버닝의 표현력은 훨씬 넓어집니다.
저는 매번 작업할 때마다 이 나무들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오늘은 어떤 온도로 나를 그릴 건가요?”
그 질문에 대답하듯 손끝의 열을 조절하고, 그 위에 마음과 정성을 새깁니다.
불은 늘 정직하니까요.
그리고 나무는 늘 그 불을 받아주므로 그 두 존재 사이에서 우리는 배웁니다.
섬세함, 인내, 그리고 자연을 존중하는 마음을요.
우드버닝을 처음 시작하신다면 나무를 먼저 느껴보시길 바라며, 손으로 결을 따라 쓰다듬고,
빛에 비춰 색의 변화를 관찰해보세요.
그 나무의 숨결을 이해할 때, 비로소 불로 그림을 그리는 진짜 감동이 시작됩니다.
오늘도 저는 나무 앞에 앉아 조용히 불을 켭니다.
그리고 그 위에 제 하루를 새깁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무는 늘 저에게 이렇게 말해줍니다.
“천천히, 그리고 따뜻하게.”